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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이야기

정의는 누가 정한 것인가?

by 아르케모션 2020. 8. 26.

인간, 우주, 만물 이 모든 것은 누가 정의한 것인가?


딱 한 질문을 해보겠다. "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 대한 정의는 누가 정했으며 그 정의에 대해 인간의 답이라고 하는 '맞다'라고 누가 정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생명은 무엇인가? 우주는 무엇인가? 당신이 가진 그 생각이 과연 맞다고 할 수 있는가?

정의를 한다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신이 세계를 만들었으니 신께서 그 정의의 중심이 아니던가? 창조론자들의 말이겠지. 그럼 진화론자들은? 세포 속에서 태어난 우리가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거 맞는가? 그 시간은 너무 더디어 우리가 못 느끼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삶은 과연 근데 지금 이게 맞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왜 필연인가? 왜 인간은 태어났는가? 왜 우리는 자기의 한계 속에 빠져 있는가?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는가? 당신은 아는가? 인간은 양자역학처럼 다중화되어 있는 모습을 두 눈만으로는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과 상상은 넘어갈 수 있다. 그 생각의 세계에서 차원은 다중 차원이다. 하지만 정작 몸에서 느껴오는 삶은 3차원에 불과하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왜 우리는 그 한계에 있는 건가? 당신은 생각해봤는가?

우리가 느끼는, 보는 모든 것들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가? 인간에게는 '무한'이라는 단어가 주어지는 경우는 단 하나이다. 상상. 그것 말고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우리는 왜 신을 바로 대 할 수 없는가? 아니 질문이 틀렸나? 신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위대한 인간이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는 인간은 절대 위대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생명체 중에서 조금 나은 정도의 생명체일 뿐이다.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그 이상인가? 딱하나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동물과 우리는 피 색깔이 같다. 아니 자세히 보면 DNA도 비슷하다. 그 말은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동물보다 우리가 하나 더 앞서 가기 때문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아직도 신이 우리를 용서했다고 믿는가? 과연 그렇게 믿는가? 신은 우리를 용서 하지도, 굽어 살피지도 않으셨다.신을 부정하지 않아도 신은 머나먼 존재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3차원이고, 나머진 인간의 두뇌에서 만들어지는 상상 속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그 존재가 나타나도 인간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3차원만 알고 있으니 말이다.그런 존재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런 존재이다. 당신은 뭔가 우리가 소중해서 보호받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인간은 서로 또 그 아래 생명체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가? 절대 그런 가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지금보다 더 깨닫고 느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멀었다. 신을 모른다. 그냥 그들 스스로 느끼는 3차원만 알고 있다.그 이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당신들은 진화할 것이다.너무나도 잘못된 인간의 그 방식들은 우리를 조금씩 좀먹고 퇴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늦기 전에 그것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인간에 간사하고 교만한 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존재에 대해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고 그 과정을 되새기며 좀 더 커다란 것을 바라보며 나아 가야 우리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끝에 있는 '신'을 볼 순 없어도 말이다. 우리의 한계에서는 그 이상을 바라보는 건 안타깝게도 한계이다.

 

PS 신의 존재조차 우리는 느낄 수 없다. 왜냐고? 보통 우리는 3차원까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모든 희망을 저버릴 수 있을 정도의 끝은 아직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언젠가.. 한계를 넘을 것이라고 믿는다.여기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남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역린"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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